카탈루냐의 역사,그 중심의 도서관 카탈루냐국립도서관
카탈루냐의 역사, 그 중심의 도서관 카탈루냐국립도서관
카탈루냐국립도서관(National Library of Catalonia)은 수 세기 동안 카탈루냐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던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1931년 스페인의 역사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큰 가치를 가진 건물은 이제 카탈루냐의 서지학적 유산을 축적하고 있다.
그림 1. 카탈루냐국립도서관의 전경. 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국가, 카탈루냐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 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10월 27일 독립공화국을 선포했다. 이에 맞서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카탈루냐에 대한 직접 통치를 결정했다. 유럽연합과 미국 등 대다수 국가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탈루냐(Cataluña), 영어로는 카탈로니아(Catalonia)는 스페인의 자치주 중 하나로 반도 북동부에 자리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헤로나, 레리다, 타라고나의 네 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도는 바르셀로나이다. 면적은 스페인 전체의 10%에 불과하지만, 스페인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이다. 인구는 2015년 기준 약 750만 명으로 스페인 전체 인구의 16% 정도다.
카탈루냐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족 정체성이 강한 곳이다. 1469년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스페인)왕국이 통합했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으로 갈등이 지속되었고, 결국 1714년 9월 11일 카탈루냐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언어는 카탈루냐어와 스페인어, 아란어 등 세 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데, 공식 문서에 지명을 적을 때는 카탈루냐어를 쓴다. 현재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것은 발렌시아(Valencia)주와 무르시아(Murcia)주, 스페인 동부의 섬들로, 이들 지역과 합치면 사용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다.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카탈루냐 사람 중에 자신을 스페인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가 많다.
그림 2. 아치형으로 촘촘히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돌들의 육중함 덕분인지 웅장함이나 화려함보다는 엄숙함과 진지함이 느껴진다.
역사 속의 카탈루냐 대표 도서관
카탈루냐국립도서관의 기원은 1907년 설립된 카탈루냐어 연구소(Institut d'Estudis Catalans, IEC) 도서관으로, 1914년 학자들을 위해 공공 문화를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 개조하여 개방되었다. 현재 카탈루냐국립도서관은 카탈루냐자치정부주청사(Palau de la Generalitat) 건물 내에 있는데, 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카탈루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으로 유명한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이 현재 장소로 이전하기 전 위치했던 장소로, 수 세기 동안 카탈루냐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가 1926년 전차 사고를 당한 후 실려 와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1931년 스페인의 역사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카탈루냐도서관은 1981년 도서관법(Llei de biblioteques, 1981)에 의해 카탈루냐국립도서관이 되었다. 국립도서관답게 연구와 상담이라는 본래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카탈루냐어로 생산된 서지들을 모아 보존하고, 카탈루냐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장서는 풍부하고 서지학적 및 문서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1981년 카탈루냐의 납본도서관으로 지정되며 카탈루냐에서 출간되는 모든 인쇄 자료 및 기록 자료를 수집하고 있어 독특한 예술, 과학, 문학 작품 등 카탈루냐의 서지학적 유산의 기반을 축적하며 대표 연구 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도서, 잡지, 신문, 메뉴 스크립트, 판화, 지도, 악보, 시청각 및 오디오 자료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약 300만 점 소장하고 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도서관 찾아가는 법부터 운영 시간, 도서관의 역사와 장서 소개, 서비스 안내, 카탈로그를 이용한 도서 검색 방법 등이 잘 설명되어 있다. 온라인으로 사전 신청할 경우 도서관 투어도 가능한데,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리고 오후 4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투어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며, 비용은 25유로다. 안내는 카탈루냐어, 스페인어, 영어로 가능하다.
보일 듯 말듯 숨어 있는 국립도서관
하지만 실제로 도서관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구글 지도는 인근을 가리키는데, 도무지 어디가 도서관 입구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쉽사리 답해주지 못한다. ‘아니, 국립도서관인데 어디인지 모른다고?’ 제대로 된 안내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상파우산타크루의 복합 건물 주위를 뱅글뱅글 돌다 마침내 벽 위에 걸린 작고 하얀 판에 보일 듯 말 듯‘Biblioteca de Catalunya’라고 새겨진 글씨를 발견했다. 그리고 계단 위로 드디어 커다란 문이 보였다.
열람실을 지키던 젊은 여직원은 능숙한 영어로 “도서관 회원 카드를 소지한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인은 방문 목적을 밝히고 여권을 제시해야 회원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카드가 있더라도 도서관의 모든 곳에 들어가고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곳은 일반 열람실뿐이다. 규모가 크고 귀한 자료가 많은 보존서고에는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다. 면적 또한 열람실은 2,700㎡ 약 816평에 불과하지만, 도서관의 총면적은 1만 5,000㎡ 약 4,537평에 이른다.
낡고 오래되고 손때 묻은 도서목록 카드
연구에 몰두하는 이용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으며 열람실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진한 고동색 원목 지붕과 둥근 아치형으로 촘촘히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돌들의 육중함 덕분인지 성당의 도서관이나 국가대표 도서관에서 풍기는 웅장함이나 화려함, 고풍스러움보다는 엄숙함과 진지함이 느껴졌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는 듯 벽돌로 이루어진 사방 벽면 사이사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밝고 화사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진중한 느낌을 주는 월넛의 원목 서가들과 직사각형의 긴 책상들, 매끈한 갈색의 마룻바닥,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울퉁불퉁 다소 거친 느낌의 벽돌들. 이 모든 이질적인 재료들이 어우러져 그윽한 안정감과 따듯한 평온함이 배어 나왔다. 이런 곳이라면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오래되고 낡은 고서를 펼치고 앉아 있어야 할 것 같다.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를 구분할 수도 없는 이가 카탈루냐국립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책을 펼쳐보니, 외국어가 아니라 외계어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언어를 모른다고 해서 도서관 탐방이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돌아서서 나오려는 데 긴 세월 탓인지, 혹은 잦았던 사람들의 손길 탓인지 끝부분이 누렇게 벗겨진 가죽으로 장정한 도서목록들이 시선을 끌었다. 도서관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들이다. 무려 1907년부터 1990년까지 사서들이 손으로 꾹꾹 힘주어가며 정갈한 글씨체로 적어간 것들이다.
그림 3. 도서관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도서목록들이다. 무려 1907년부터 1990년까지 사서들이 직접 적은 것들이다.
정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으세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도서관을 나와 천천히 공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들어갈 때는 보이지 않던 대형 플라스틱 체스판 두 개가 마당에 놓여있었다. 체스판을 내려다보며 심각하게 다음 수를 골몰하는 학생들을 지나 녹음이 무성한 정원을 향해 걸어가니, 이번에는 분수대 앞에 책을 전시해놓은 수레에 눈길이 갔다. 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일종의 아웃리치 서비스다. 책 옆에는 당일 자 신문도 몇 종 놓여 있다. 수레를 지키는 도서관 직원에게 이용자가 빌려간 책을 반납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다만 집에서 다 읽은 책을 가져오면 전시된 책들과 교환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림 4. 도서관 앞 풍경이다. 자유롭게 책을 가져가 읽을 수 있는 수레와 커다란 체스판이 보인다. 수레를 지키는 직원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글∙사진_ 조금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뉴욕주립 대학교 문헌정보학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서로, 선진사회를 이끄는 힘이 도서관이라고 믿는다.
등록일 :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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