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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칭 ‘우연’ 사서, 로스앤젤레스시립중앙도서관 백혜원 사서와의 만남

2018-02-13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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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우연 사서’라고 지칭하는 이가 있다. 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시립도서관(Los Angeles Public Library, LAPL) 중앙도서관(Central Library)의 백혜원 사서이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문헌정보학을 공부했고, 또 사서가 됐기 때문에 자신은 우연히 사서가 된 ‘우연 사서’라고 말했다. 우연히 사서의 길로 들어섰지만 백 사서는 누구보다도 사서의 일과 LAPL을 사랑한다. 백 사서가 우연히 사서가 된 사연과 LAPL의 이야기를 월드라이브러리에서 담아 보았다.

월드라이브러리: 저희 월드라이브러리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선생님의 간략한 소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미국으로 우연히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또 그 우연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LA)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학원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하게 된 LAPL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고요. 이제는 한국에서 살았던 세월보다 어느덧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졌네요.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과의 인연은 가족 외에는 없었는데 이렇게 월드라이브러리와 인연을 맺어 한국의 사서 여러분과 사서를 꿈꾸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월드라이브러리: 한국에서는 일본어 학과를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어떻게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게 되셨나요?

대학 졸업 후, 미국 테네시주 메리빌시(Maryville, Tennessee)에 있는 한 대학의 외국 학생 초청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1년 6개월 동안 대학수업을 들으면서 영어와 생활을 익히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어학을 전공했던 저는 미국에서 여러 전공 분야의 과목을 들으며 흥미를 느끼게 됐고, 그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시고 계셨던 지인과의 상담을 통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가 없었고 두루두루 여러 분야를 알고 싶었던 저는 지인의 부인과 상담을 하게 됐습니다. 그 분께서는 사서로 재직하고 계셨고, 사서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문헌정보학 대학원 학장으로 계셨던 퍼셀(Purcell) 교수님을 소개해주셨지요. 이렇게 저는 우연히 문헌정보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답니다. 다른 동료들처럼 특별히 사서가 꼭 되고 싶어서 사서가 된 경우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우연 사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월드라이브러리: 현재, 선생님께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시립중앙도서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데요, 로스앤젤레스시립중앙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인가요? 도서관 자랑 좀 해주세요.

저는 우리 도서관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떤 여행 안내 책자에 LA에서 꼭 방문해야 할 명소로도 소개되었다고 하네요. 미시시피강 서쪽에서 제일 큰 시립도서관 시스템으로, 미국에서는 3대 시스템 중 하나이지요. 1개의 중앙도서관과 72개의 지부(branch)로 구성돼 있고요, LA 시의 수많은 지역사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매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답니다. 중앙도서관은 지상 3층, 지하 4층, 총 7층에 주제별로 자료가 배치돼 있습니다. 자료의 규모 역시 LA 시립도서관들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많은 자료와 함께 분야별 전문지식을 가진 사서들이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사진 1. LAPL 중앙도서관의 외부모습

(1926년에 지어진 LAPL 중앙도서관은 1986년 방화로 인해 많은 손실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피해가 없어 초기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음. 이후 피해를 복구하고 확장·리모델링 실시)


사진 2. 중앙도서관 내 벽화

(방화 이전부터 건물 내부에 그려져 있는 벽화)



사진 3. 다양한 지역 출신의 도서관 이용자들을 위한 자료 비치

(LAPL은 10개 이상의 언어로 된 도서들을 구입하고 있으며 언어 학습을 위해 100개 이상의 언어 교재를 비치하고 있다.)



LAPL은 다양한 서비스를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해 제공하고 있는데요, 그 첫 번째가 전시입니다. 3개의 전시장에서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는데요,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셰익스피어 연극단의 사진자료들을 전시했었고요, 한 2년 전에는 독일 나치 선동 활동 자료들을 그 당시 미국의 정치 상황과 절묘하게 접목시켜 전시를 개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이기도 합니다.


‘The Source’라는 노숙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도서관에서는 장소와 간단한 간식을 제공하며, 여러 정부기관들이나 지역단체들을 모아서 노숙자들이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재향 군인들을 위한 ‘Veteran Service’와 구직자들의 구직 활동을 돕는 ‘Job and Career Center’도 마련돼 있습니다. 또한 3개월 단위로 컴퓨터 수업을 개최하고 있는데요, 단순한 컴퓨터 사용법이 아닌 이베이(eBay)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방법 등 지역주민들이 구미에 맞는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온 외국인들에게 이민법과 이민 후 미국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8일, 이민자들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LA 시장과 대중매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The New Americans Center(이민자 지원 센터)’가 드디어 도서관 내에 문을 열게 됐습니다. 사서들은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미 법무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민자 권리를 위해 활발히 활동을 해오던 단체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법무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센터에서 이민자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랑할 것들이 굉장히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죠.


사진 4. The New Americans Center

(이민자 지원 센터)



월드라이브러리: 외국에서 사서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굉장히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계신데요, 실제로 만족하시나요? 어떠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지요? 어려움도 있으신가요?


사진 5. 근무하고 있는 백혜원 사서의 모습

어떤 직업에서도 항상 100%의 만족을 느낄 수 없겠지만 저는 제 일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저는 현재 중앙도서관 액세스 서비스(Access Services) 부서에서 선임 사서(Senior Librarian)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서장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네요. 액세스 서비스는 LA시립도서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서로, 그 밑에 5개의 소부서가 있으며, 현재 44명(정원 55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관리직이기 때문에 직원 평가와 징계를 포함한 직원 관리·인사 등을 하고, 직접 참고봉사 업무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직원들을 도우며 간접적으로나마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다른 부서에서 문의를 해오면 사서로서의 실력을 잃어버리지 않게 최선을 다하여 돕고 있습니다. 일에서 어려운 점이라면 관리해야 하는 직원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종종 직원들이 범하는 실수와 잘못된 일처리 방식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 참 뒤에 발견됐을 때에는 바로잡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돼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한마디로, 관리자로서 직원의 관리와 인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저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월드라이브러리: 지금까지 미국에서 사서로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어떤 상황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나요?

첫 번째는, 아동사서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입니다. 아동사서가 업무 중 하나가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주로 책 1-2권과 도서관증을 발급 받는 방법을 소개하고, 도서관 프로그램을 홍보합니다. 그 날도 이 업무를 위해 한 학교의 3학년 교실을 방문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신나게 읽은 아동 도서를 소개하는데, 반응이 영 별로였습니다. 저는 약간의 실망을 하고 도서관으로 돌아와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어머니와 학생이 저를 찾더니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들이 오늘 선생님이 방문한 학교 3학년 학생인데, 우리 아들이 오늘 선생님이 소개한 책을 읽고 싶다고 학교 끝나자 마자 도서관에 가자고 조르네요. 그 책 좀 찾아주시겠어요?” 그리고 나서 1주일 뒤, 그 어머니께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또 도서관을 찾아주셨습니다. 그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들이 영 책 읽는 걸 싫어해요. 지금까지 학교 교과서만 겨우 봐왔는데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는 도서관에 자꾸 가자고 하네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감동해서 울컥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별로였기 때문에 제 잘못인 줄 알고 의기소침해 있던 저로서는 그 학생과 어머니로 인해 다시 미소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그 학생과 어머니는 자주 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고요,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 학생이 일년에 한 번씩은 제가 소개한 책을 꼭 다시 읽었다는 것이에요.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이 에피소드는 저를 이곳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많은 실망 속에서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책과의 “연애”를 시작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그 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과연 사서 말고 어떤 직업이 그런 일을 또 할 수 있을까요? 이 외에도 생각나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일들의 공통점은 제가 일하면서 만난 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미소 짓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맙다는 한 마디에 모든 힘든 일들을 잊게 됩니다.



월드라이브러리: 한국 사서들, 그리고 사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미국에서 가끔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나 지금 막 사서의 길을 들어선 이들을 만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출근해서 최소한으로만 할 “일”로 대할 것이냐, 아니면 전문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프로그램과 나를 발전시키는 직업으로 대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든, 일단 사서의 길로 들어선 이상 내 생에 최고의 직업으로 발전시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 5일 주 단 2-3일만이라도 오늘 내가 가진 능력의 100%를 발휘했다고 생각하면 나의 최고의 직업이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사서라는 직업은 참 소중하고 또 가장 영향력이 큰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를 다루는 직업. 올바른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거나 그들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정보를 분류·색인하는 전문직.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직업을 키워가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라도!

편집
계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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