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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한국 단편 – 박태원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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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그의 대표 단편을 통해 우리 근대 소설을 살펴보는 한국 단편 다시 읽기 시리즈, 지난 시간에는 이태준의 생애와 그의 단편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잘 알려진 구보 박태원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림 1. 박태원

박태원은 1910년 서울 중인계층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약사였고 숙부는 의사, 숙모는 교사였는데요.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개화적이었다고 하네요.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박태원은 어릴 적 한학을 익혔습니다. 이후 경성제일고보에 다니면서 문학서적을 탐독하고 창작했으며, 2학년이던 1923년 ‘동명’에 <팔학>이라는 글을 투고해 당선되기도 했지요.

박태원은 1925년 조선일보에 ‘할미꽃’이란 시를 발표했습니다. 1926년에도 ‘누님’이라는 시를 발표할 정도로 문학에 열정을 보였죠. 그가 10대 후반에 지은 시만 해도 100여 편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4학년 무렵 휴학을 합니다.

박태원의 숙부는 박태원이 어릴 때부터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박태원이 휴학하자 숙부는 당시 문단에서 영향력 있던 백화 양건식에게 그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또한, 박태원의 고모는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을 통해 박태원을 이광수에게 소개해주었는데요. 해서 박태원은 이광수에게 문학 수업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제일고보를 복학, 졸업한 후 박태원은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는데요. 1930년에는 일본 호세이대학 상과에 입학해 유학을 떠납니다. 그런데 학업에 열중하기보다는 영화와 미술, 음악 등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유행하는 옷차림과 머리를 하고 술집과 영화관을 자주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결국, 2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되죠.

일제강점기 말, 박태원 또한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작품 <군국의 어머니>(1942)를 발표했습니다. 이 외에 조광과 매일신보에 친일 글을 각각 한 편씩 발표했는데요. 친일 행적이 비교적 노골적이지 않아 ‘소극적 협력’으로 부릅니다.


그림 2. 노년의 박태원

박태원은 해방 후 조선문학건설본부 등 좌파 문인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6·25 전쟁 발발 이후 서울이 함락되자, 이태준을 따라 월북했습니다. 서울에 있던 아내와 2남 3녀의 자녀를 두고 홀로 월북한 것입니다. 월북 후 박태원은 권영희와 재혼했는데요. 권영희는 박태원의 친구 소설가 정인택의 아내였습니다. 정인택이 사망한 후 1956년 박태원과 권영희가 재혼한 것입니다.


그림 3. 소설가 김소운, 화가 이승만, 소설가 박태원, 소설가 정인택(왼쪽부터)

박태원은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강제노동수용소로 쫓겨납니다. 당시 월북했던 많은 남로당 계열 문인들이 숙청당했는데요. 박태원은 1960년 다시 작가로 복귀해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1965년 박태원은 망막염으로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1975년에는 뇌졸중으로 전신불수가 되고 말았죠. 그런 와중에도 그는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아내 권영희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집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완성한 작품이 대하역사 소설 <갑오농민전쟁>입니다. 이는 북한에서 최고의 역사소설로 손꼽히고 있죠. 그 후, 박태원은 1986년 고혈압으로 사망합니다.


그림 4. <갑오농민전쟁>, 깊은샘, 1993

박태원의 작품은 모더니즘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더니즘이란 기존의 관습적인 문학에 반대한 실험적인 문학을 말합니다. 이 당시 모더니즘은 카프 문학에 반대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했는데요. 지난번에 소개했던 이태준과 절친한 박태원 역시 구인회 회원이었습니다. 첫 멤버 중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이 탈퇴한 후 박태원이 이상, 박팔양과 함께 가입했는데요. 박태원은 이상과도 각별해 이상이 운영하던 다방에 자주 드나들며 술과 문학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림 5. 이상, 박태원, 김소운(왼쪽부터)

구인회에서 활동하던 박태원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문학을 부정합니다. 문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는데요. 오버랩이나 몽타주 같은 영화 기법을 활용하기도 하고, <딱한 사람들> 에서는 기호, 신문광고 등을 소설에 삽입하기도 했죠. 또 어떤 특별한 사건 없이 주관적인 관찰로만 소설을 채우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중학생용 국어과 부교재인 ‘중등작문’에서 글쓰기 방법으로 ‘관찰’과 ‘묘사’를 강조했는데요.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이를 묘사합니다. 그러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자기 상념에 빠져들곤 하죠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28살 소설가 구보가 도시 이곳 저곳을 산책하는 내용입니다. 아무런 극적 사건도 없고, 그저 장소가 바뀔 뿐이죠. 이 소설은 주인공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적는 ‘의식의 흐름’ 기법과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몽타주’ 기법을 사용해 주인공의 내면의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림 6.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 한 장면

세태소설의 걸작으로 꼽히는 <천변풍경>은 청계천 주변 하층민의 세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박태원은 이 작품에서 주변과 사람들을 묘사할 때 영화의 ‘교차 편집’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주인공이 산책자로서 외부를 관찰하는 박태원의 소설을 ‘고현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림 7. <천변풍경>의 배경, 1930년대 청계천 광통교

박태원은 이러한 대표작 때문에 모더니스트로 불립니다. 하지만 이후 <낙조>, <골목 안> 등 현실에 관심을 두는 리얼리즘 작품들도 발표했습니다. 월북 이후 대하 역사 소설인 <갑오농민전쟁>도 집필하고요. 그는 모더니즘 작품을 쓰면서 리얼리즘 작품도 쓰고, 이후 역사소설까지 쓴 것입니다. 그의 작품 중<천변풍경>은 그의 모더니즘적인 모습과 리얼리즘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 받는데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해방 후 그의 좌익 활동이 갑작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살펴볼 작품은 1936년 발표된 단편 <방란장 주인>입니다.


그림 8. <방란장 주인>, 1970

주인공 방란장 주인은 젊은 화가로 다방 ‘방란장’을 2년 동안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운영이 뜻대로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죠. 더군다나 ‘모나미’ 다방이 생겨 더욱 타격을 받으면서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직원 ‘미사에’의 월급도 밀렸습니다. 주인공은 그 와중에 미사에와 결혼하는 것을 고민합니다.

(…상략…) 이 기회에 아주 시원하게 찻집이고 무어고 모두 떠엎어 버리고서 내 알몸 하나만 들고 나선다면, 참말이지 만성이 말마따나, 하다못해 시나소바 장수를 하기로서니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느냐고, 그는 거의 흥분이 되어가지고 얼마 동안은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골몰이었으나, 사실은 말이 그렇지, 그것도 역시 어려운 노릇이, 혹 자기 혼자라면 어떻게 그렇게라도 길을 찾는 수가 없지 않겠지만, 그러면 그렇게 한 그 뒤에, 돌아갈 집도, 부모도, 형제도, 무엇 하나 가지지 않은 미사에를 대체 자기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고, 하고,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면, 그는 그만 제풀에 풀이 죽어, (…하략…)

그러다 이 다방에 ‘방란장’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어려움 없이 예술 활동을 하는 수경선생이 히스테릭한 아내에게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납니다.

시시할 정도로 크게 이렇다 할 사건이 전개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모든 상황을 단 한 문장에 담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5,558자가 한 문장으로 된 특이한 소설입니다.

이는 여러 가지 실험을 강조했던 박태원의 모더니즘 작품 중 하나인데요.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인 만큼 그 실험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 쉼표에 주의하면서 그 흐름대로 글을 읽게 되죠. 그래야만 한 문장으로 된 소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쉼표 때문에 독자는 매우 집중해서 이 작품을 읽어야 합니다. 결국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이 작품을 읽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림 9. 이상이 운영하던 다방 자리에 다시 문을 연 ‘제비다방’

그런데 이 작품은 주인공 ‘나’가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서술자가 모든 사건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독자는 이를 통해 방란장 주인의 심리에 집중하게 되죠. 또 2년 동안의 다방 운영과 이를 함께 한 미사에와의 관계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많은 접속사를 사용해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이뤄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이죠.

단 한 문장으로 된 소설이란 다시 말하자면 마침표가 딱 한 개 있는 소설이라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그 마침표 한 개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상략…) 방란장의 젊은 주인은 좀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거의 달음질을 쳐서 그곳을 떠나며, 문득,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그의 전신에, 느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이 작품은 고독을 이야기하며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 놓고 예술을 할 수 없는, 생활과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자신에 대한 고독입니다. 미사에와 결혼해 어려움을 헤쳐나가 볼까 생각도 하지만, 그마저도 무기력한 삶에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죠. 그러다 늘 예술가로서 별걱정 없는 삶을 산다고 여기며 부러워하던 수경 선생과 아내를 목격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독을 더욱 확연하게 느끼죠.

결국, 이 소설이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것은 예술가의 고독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방란장 주인의 상황과 생각을 한 문장으로 읽어오다가 고독과 직면하고, 거기에 찍힌 마침표를 통해 그 고독을 느끼는 것이죠. 이 고독이라는 것은 1930년대, 무기력하기만 한 예술가의 고독 그 차체를 말합니다.

(…상략…) 문득 자기가 그나마 찻집이라고 붙잡고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이미 완전히 게으름에 익숙하고, 화필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아니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그림다운 그림을 단 한 장이라도 그리지는 못할지는 모르겠다고, (…하략…)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주인공의 심리가 담긴 이 한 문장이 방란장 주인의 무기력함과 막연한 불안함을 대신 보여줍니다.


그림 10. 귀스타브 모로, <고독>

박태원은 ‘중등작문’에서 “말 한 마디 한 마디까지도 그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아닌가를 충분히 생각하고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표현에 불충분한 점이 있으면, 또 자구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고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을 겁니다. 한 문장으로 소설을 쓴다는 게 쉬울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 한 문장을 거슬리거나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쉼표 하나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을 테지요.

함께 살펴본 <방란장 주인> 어떠셨나요? 한 문장이 소설이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으셨나요? 박태원이 이를 통해 얻으려 했던 효과에 대해서 공감하셨나요?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어떤 것인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직접 읽고 확인하시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태원(朴泰遠, 1909~1986)
<까마귀>, <복덕방>, <패랑갱>, <농군>, <해방 전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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