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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한국 단편 – 현진건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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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 다시 읽기 시리즈, 오늘은 현진건을 소개할까 합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문학 시간에 배운 것도 있겠지만, 요즘은 소설의 마지막 대사 “왜 먹지를 못하니”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막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친숙한 작품인데요. 친숙한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진건의 생애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1. 현진건
그림 1. 현진건

현진건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형이 세 명 있었는데요. 동네에서 한학을 배우다 아버지가 세운 대구노동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10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16살에 결혼을 합니다. 이후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자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죠. 이후에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후장대학 독일어전문부에 입학하는데요. 1919년 당숙 현보운에게 입양되어 서울로 돌아옵니다.

그림 2. 철거 전 현진건 생가
그림 2. 철거 전 현진건 생가

현진건은 1920년 문예지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합니다.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등 예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이라는 혹평을 받았죠. 하지만 이후 단편 <빈처>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림 3. 문예지 <개벽>과 <희생화>
그림 3. 문예지 <개벽>과 <희생화>

그는 작가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기자생활을 겸해 시대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거칩니다. 사실 당대 많은 작가들은 기자 생활을 같이 했었죠. 우리가 살펴본 이광수나 김동인, 염상섭도 그러했는데요. 당시 전업 작가 원고료만 가지고 생활하기는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대부분 기자 활동과 병행했죠.

일제 식민지하에서 지식인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회사원과 은행원이었는데, 결국 식민지 착취와 연결된 일인지라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교사나 언론계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했는데요. 작가들은 현실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구체화하는 기자에 많이 몸담았던 것이죠. 기자 역시 글을 쓰는 직업이란 것도 한 몫 했겠죠.

현진건의 대표작을 살펴보면 주로 1920년대에 치우쳐 있고 1930년대에는 작품 활동이 뜸합니다. 또 신문사를 그만둔 뒤에는 다시 활발히 창작 활동을 했는데요. 이는 그의 기자 생활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기자생활 때문에 작가로서 책을 읽고 글 쓸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신문기자로서 현진건의 편집 능력은 꽤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손만 거치면 신문이 달라진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 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 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말로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림 4. 일장기 말소 사건
그림 4. 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년간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일장기 말소사건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운 사건입니다. 당시 손기정 선수는 일본 대표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유니폼에는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는데요. 이 일장기를 지운 채 신문에 사진을 실었던 것이죠. 복역 후 출옥하면서 현진건은 동아일보 기자를 사직합니다.

기자를 관둔 그는 양계장을 운영하는 등 애를 썼지만 다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술에 의지했다고 하네요. 현진건은 원래부터 이름 난 주당이었는데요. 동아일보에 입사한 후 술을 마시고 사장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는군요. 이유는 한번도 술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일은 사장이 용서해주었다고 합니다. 또 자주 어울리던 문인들이 집에 오면 닭을 잡아 안주로 먹었다고 합니다. 해서 닭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도 하고요. 이처럼 현진건은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꽤 많은, 술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셋째 형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3년간 옥살이를 하는데요. 출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1932년 12월 생을 마감합니다. 다음해 현정건의 아내, 그러니까 현진건의 형수는 자살하고 말죠. 또 현진건은 세 딸을 낳았는데 앞선 두 딸은 어린 나이에 죽는 등 아픈 가정사를 겪었습니다.

현진건은 1943년 폐결핵과 장결핵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도 사망하고 말죠. 그의 외동딸이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의 딸은 소설가 월탄 박종화의 며느리가 되었다고 하네요. 현진건의 유해는 화장해 한강 이남에 묻혔는데요. 묘소조차 남아 있지 않고, 그 위치 또한 막연하다고 합니다.

현진건은 김동인과 함께 근대 단편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한국 단편소설의 개척자로 불리기도 하지요. 이는 그의 소설이 갖춘 탄탄한 짜임새와 뛰어난 묘사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작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짜임새 있는 구조와 그에 따른 스토리 전개가 아닌 ‘우연’의 등장이 많았죠.

하지만 현진건의 소설은 짜임새 있는 구성, 즉 소설에서 말하는 플롯이 잘 짜여 있습니다. 또 간결한 문체를 사용해 한국 단편의 수준을 높였다, 단편을 정착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죠. 김동인이 현진건을 두고 ‘기교의 천재’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림 5. 현진건 문학비
그림 5. 현진건 문학비

현진건의 초기 작품은 시선이 그의 주변에만 머문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초기 작품들이 신변소설이기 때문인데요. 신변소설은 작가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은 소설의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입니다. 가령 가난한 무명작가와 그의 아내 이야기를 그린 단편 〈빈처〉는 본격적인 근대 단편이란 평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인식이 자신주변만 맴돌 뿐, 사회적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닙니다. 그 한계로 인해 독자에게 더 깊고 묵직한 울림을 주긴 힘들었죠.

그림 6. 현진건, <빈처>
그림 6. 현진건, <빈처>

하지만 이후 작품들을 보면 그런 비판이 무색해집니다. 작품들이 그 자신의 이야기에서 점차 사회현실로 확대되어 나가거든요. 즉 <빈처>에서 예술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면, 이후 작품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 원인, 그 근본적인 이유인 식민지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 지식인의 이야기에 머물던 이야기는 민중의 이야기로 확대됩니다. 그 시작이 바로 오늘 같이 살펴볼 <운수 좋은 날>입니다.

그림 7. <운수 좋은 날>, 문학과지성사, 2008
그림 7. <운수 좋은 날>, 문학과지성사, 2008

김 첨지는 열심히 일하지만 매우 가난합니다. 달포가 넘도록 기침으로 쿨럭거리는 아내에게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을 정도지요.

그야말로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10전짜리 백동화 서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10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주었더니, 김첨지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년이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이었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은 그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지르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홉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림 8. <운수 좋은 날> 일러스트 1
그림 8. <운수 좋은 날> 일러스트 1

이러한 대목에서 김첨지네가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알게 해주는데요. 동전 몇 푼에 눈물이 날 정도이고, 다 큰 어른이 손으로 움켜서 밥을 먹을 만큼 배가 고픈 현실입니다. 또 아픈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설렁탕’이라는 데서도 그들의 가난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이 그저 서민들이 즐기던 설렁탕이었던 것입니다. 고작 설렁탕 한 그릇이 그들에게는 소원이었죠. 소원조차 소박한 현실, 큰 소망을 가질 수조차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려움이,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재수가 좋아 인력거에 손님은 끊이지 않죠. 하지만 김첨지는 이 계속되는 행운에 왜인지 모를 불안함을 느낍니다. 이는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그림 9.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스틸컷 1
그림 9.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스틸컷 1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켕기었다. 앞집 마마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깃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그르렁그러렁하였다.

아내의 말 때문인지 김첨지는 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그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작기를 노리는 듯하였다. 그러자 어엉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을 듯싶다. 딸꾹딸꾹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소설 속에는 행운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등장합니다. 손님을 계속 태우며 돈을 벌면서 행운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은 꼽친 것보다도 오히려 곱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행운이라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김첨지도 모르지 않습니다. 또 어느 정도 행운으로 포장된 불행이라는 것을 예감합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오, 구해다오 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불행을 확인하는데 주저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바로 갈 수 있지만 가지 않고, 친구와 평소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는데요. 이러한 장치는 독자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몰고 갑니다. 또 불안의 원인을 바로 밝히지 않고 한번 더 독자의 조바심을 자아냅니다.

김첨지는 또 친구에게 마누라가 죽었다는 농담을 합니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화증을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마누라가 죽었다는 농담에 친구가 그만 집에 돌아가기를 권하자 김첨지는 소리를 지르며 위처럼 말합니다. 김첨지 또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질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무언가 잘못된 그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상황을 미루고 싶어서 그는 굳이 마시지 않아도 되는 술을 평소보다 더 많이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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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그림 10.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스틸컷 2

쿨럭거리는 기침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트리는, 깨트린다느니 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 소리를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일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가 이처럼 일부러 고함을 지르며 집에 들어서는 것은 앞서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과 같은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덤 같은 침묵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 그 침묵이 하루 종일 따라다녔던 불길한 예감과는 무관하길, 하지만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죠. 현진건의 사실적인 묘사로 김첨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이 어느새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데요. 그래서 더 생생하게 그 분위기가 전달됩니다.

결국 오늘의 엄청난 행운은 큰 불행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되죠. 계속되었던 행운이 클수록 그 불행은 더 처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운수 좋은 날은 가장 슬픈 날이 되어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죠. <운수 좋은 날>은 현실과 희망의 괴리가 너무 커서 그 반어적 이름이 현실의 씁쓸함을 배가시킵니다. 현실과 너무나 다른 제목이 김첨지네 가족의 가난과 궁핍함, 안타까움을 더해줍니다.

세차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소설의 첫 대목인데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는 설명에서부터 우리는 어쩌면 불길함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중간중간에도 비는 계속되는데요. 이 비는 소설의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왠지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막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추적추적 끈질기게 내리는 비는 주인공에게 그리 쉽게 행운이 갈 리 없다는 걸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삶 속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빈곤과 궁핍을 상징하는 듯하지요.

그림 11. 운수 좋은 날 일러스트 2
그림 11. 운수 좋은 날 일러스트 2

그러니 소설 속에서 계속되는 행운이, 행운이 아닐 거라는 것을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아내의 말, 김첨지의 심리를 통해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앞서 살펴보았듯 현진건은 그들이 처한 빈곤과 어려움을 설렁탕 등을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냥 무척 가난하다는 말보다 그들의 궁핍함이 여실히,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작가 현진건은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몇몇 장치를 심어놓았습니다. 또 행운을 말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을 같이 전달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죠.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조바심이 나는데요. 이는 작가가 치밀하게 이야기 구조를 완성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를 근대 문학의 완성자라고 부르는 것이고요.

앞서 밝혔듯 이 작품은 그가 신변소설을 벗어나 식민지 시대 민중의 어려움에 눈을 돌린 첫 작품입니다. 초기 작품에서 예술을 몰라주는 현실에 대해 불평 했다면, 이 소설을 시작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파악한 것이죠. 설렁탕 한 그릇이 소원일 만큼 어려운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 예술을 논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식민지 현실에서 민중의 삶은 고단하고 궁핍했으니까요. 결국 이러한 그의 변화는 작가로서 시각이 넓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요. 1920년대 많은 작가들이 지식인의 좌절과 낭만적인 현실 도피를 그리던 시절, 그는 가난한 민중의 삶으로 그 자신의 시각을 넓힌 작가였습니다. 그 개인뿐 아니라 문학사에서도 의미 있는 행보였던 것입니다.

현진건(玄鎭健, 1900~1943)

<운수 좋은 날>, <빈처>, <술 권하는 사회>,<B사감과 러브레터>,<할머니의 죽음>,<고향>,<무영탑>,<적도>외


참고자료

서적

<20세기 한국 소설3>,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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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미디어 : http://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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